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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 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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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inc82 (토론 | 기여)님의 2011년 12월 15일 (목) 22:21 판 (→‎주석)
조선태조어진
(朝鮮太祖御眞)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보물
지정번호 보물 제931호
(1987년 12월 26일 지정)
소재지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44
어진박물관
제작시기 조선

조선 태조 어진(朝鮮太祖御眞)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이다. 대한민국의 보물 제931호이다. 현재 어진의 진본은 전라북도 전주시 경기전(慶基殿)의 어진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으며, 모사본이 국립전주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등에 전시되어 있다.

역사

조선시대에 태조 이성계의 어진은 총 26점이 제작되었지만 현재 전주시 경기전 경내의 어진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어진이 현존하는 유일본이다. 조선 왕조는 태조의 어진을 봉안할 진전(眞殿)으로 경복궁의 선원전, 함경도 영흥의 준원전, 전주의 경기전, 개성의 목청전, 평양의 영숭전, 경주의 집경전을 세웠다. 경기전의 어진은 태조 재위 당시에 제작된 집경전의 어진을 1409년(태종 10년)에 모사하여 1410년(태종 11년)에 봉안하였으며,[1] 1763년(영조 39년)에 수리를 거치고 나서 1872년(고종 9년)에 어진도사(御眞圖寫)의 화사(畵師)로 활동한 조중묵이 다시 모사하였다.[2]

경기전의 태조 어진은 1592년 임진왜란 때에 의주를 거쳐 묘향산에 이안되었고, 1597년 정유재란 때에 어진이 봉안되어 있던 경기전이 소실되자 1614년(광해군 6년)에 경기전이 중건된 후에야 전주로 환안되었다. 경기전 어진은 1636년 병자호란 때에 다시 무주 적상산으로 피난을 가서 이듬해 환안되었다. 1767년(영조 43년)에는 전주성에 화재가 발생하여 전주향교로 옮겨졌으며, 동학 농민 운동 당시에는 위봉사 법당으로 이안된 후 다시 환안되었다.[3]

2005년문화재청의 국정감사에서 태조 어진의 훼손 사실이 드러나 2008년에 보존 처리를 완료하여 전주시로 반환되었으며,[3] 2010년부터는 경기전 경내에 위치한 어진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같이 보기

바깥 고리

주석

  1. 서동철.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58)”. 서울신문. 2011년 12월 15일에 확인함. 
  2. 이광형. “600년 조선왕조 위엄 지킨 태조 어진”. 국민일보. 2011년 12월 15일에 확인함. 
  3. 김성수. “숱한 곡절과 시련의 역사 품은 태조어진”. 뉴시스. 2011년 12월 15일에 확인함. 

틀:대한민국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