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프랑스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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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프랑스 총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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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프랑스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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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0
0
17.6%
13.7%
9.1%
15.5%
8.3%
18.9%
1.7%
득실표율
1956년 선거와 정당별 득실율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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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4
12
10
8
6
4
2
0
-2
-4
-6
-8
+14.91%
−1.29%
−1.78%
+0.57%
−2.69%
−6.46%
+1.7%
1958년 프랑스 총선은 1958년 프랑스 제5공화국 성립으로 치러진 총선으로, 결선투표제가 도입되었다.
배경
알제리 전쟁으로 정치불안이 가중되던 1958년 5월 13일, 알제리 주둔군은 프랑스령 알제리 수호와 샤를 드 골 장군 복귀를 외치며 반란을 일으켜, 코르시카를 점령하고 파리를 공격하겠다 협박한다. 이에 피에르 프리믈랭 총리를 비롯해 기 몰레 인터내셔널 프랑스지부장, 루이 자키노 소상공인과 농민의 국민중심 총재 등은 드 골 장군을 총리로 추대하며 6개월간 전권을 위임해 헌법을 작성하도록 했다. 9월 28일, 해당 헌법이 국민투표를 통과하면서 프랑스 제5공화국이 성립했고, 새 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총선이 치러졌다. 드골 지지세력은 신공화국연맹을 창당했음에 비해, 진보세력은 5공화국에 대한 찬반으로 분열되었고, 이는 연대가 중요해진 새 선거제도 하에서 진보세력의 몰락을 가져왔다.
선거 결과
정당별 의석수
정당 | 의석수 |
---|---|
신공화국연맹 | |
소상공인과 농민의 국민중심 | |
중도 우파 | |
대중공화운동 | |
인터내셔널 프랑스지부 | |
급진당 | |
프랑스 공산당 | |
민주세력연맹 | |
기타 | |
합계 |
득표
정당 | 1차투표 | 결선투표 | ||
---|---|---|---|---|
득표수 | 득표율 | 득표수 | 득표율 | |
프랑스 공산당 | 3,882,204 | 3,833,418 | ||
신공화국연맹 | 3,603,958 | 5,249,746 | ||
인터내셔널 프랑스지부 | 3,167,354 | 2,574,606 | ||
소상공인과 농민의 국민중심 | 2,815,176 | 2,869,173 | ||
중도 우파 | 2,445,751 | 1,365,877 | ||
대중공화운동 | 1,858,380 | 1,370,246 | ||
급진당 | 1,700,070 | 1,059,301 | ||
극우파 | 669,518 | 172,361 | ||
민주세력연맹 | 347,298 | 146,016 | ||
합계 | 20,341,908 | 18,640,774 |
진보세력의 분열로 드골의 신공화국연맹을 비롯한 보수세력은 압승을 거뒀으며, 12월 21일 드골을 대통령으로 선출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