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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에 뉴스페인(New Spain)(현 멕시코, 스페인어로는 [[누에바 에스파냐]](Nueva España))의 스페인 사람들 사이에 북쪽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시볼라(Cibola)"라고 부르는 "7개의 황금 도시(Seven Cities of Gold) "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뉴스페인 총독은 1539년 마르코스 데 니자(Marcos de Niza) 신부를 단장으로 7개 "시볼라 황금도시" 소문을 확인하는 원정단을 보냈다. 원정단이 뉴멕시코 주니 (Zuni) 인디언 마을에 왔을 때 일행 중 명이 인디언에게 붙잡혀 목숨을 잃자 일행은원정단은 도주했다원정을 끝내고 출발지로 돌아왔다. 원정단은 멕시코 시티로 돌아와 총독에게 사볼라라는 도시를 방문했고, 그 도시는 멕시코시티보다 몇 배나 컸다고 과장하는 허위 보고를 했다. 총독은 1540년에 탐험가 [[프란시스코 바스케스 데 코로나도]] (Francisco Vázquez de Coronado)장군에게 대규모 원정부대를 맡기고 시볼라 황금 도시를 찾게 했다. 고생 끝에 코로나도 원정대는 시볼라 도시가 있다는 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부유한 황금 도시라는 시볼라는 찾지 못하고 진흙으로 지은 어도비집에 사는 주니 푸에블로 마을만 발견했다. 코로나도 장군은 하위쿠(Hawikuh) 주니 인디언 마을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주니족]]과 전투로 부상을 입어 원정부대는 마을에 주둔하였다.
 
주니 푸에블로에 주둔했던 기간에 코로나도 장군은 가르시아 로페스 데 카르데나스(Garcia Lopez de Cárdenas)에게 작은 정찰단을 이끌고 북쪽지역을 탐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정찰단은 [[콜로라도강]]을 찾아야 했고, 20일간 20일만 [[그랜드 캐니언]]을 흐르는 콜로라도강을 발견했지만 그랜드 캐니언 절벽을절벽 아래로 내려가지는 못했다. 이들은 그랜드 캐니언을 처음 본 유럽인이 되었다. 코로나도 장군은 두번째 정찰단을 돈 페드로 데 토바르(Don Pedro de Tovar)에게 맡겼고, 정찰단은 [[호피족]]이 사는 호피 메사를 발견했다. 코로나도는코로나도 장군은 황금 도시가 동쪽에 있다는 안내원의 말을 믿고 뉴멕시코 [[리오그란데강]]가 티웨쉬<ref>{{웹 인용 |제목= 뉴멕시코의 역사 |url= https://americasouthwest.com/history/nmhistory/ | 웹사이트= 아메리카남서부}}</ref>를 지나서 지금의 [[캔자스]]까지 원정했으나 헛소문만 확인했다. 그는 티웨쉬로 돌아와 겨울을 나고 1542년 [[뉴스페인]]으로 돌아갔다.
 
=== 스페인인의 정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