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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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e=Not one roof beam, not one grain of rice, not one pygmy Negrito bone has been recovered. Any theory which describes such details is therefore pure hypothesis and should be honestly presented as such. |page=138}}</ref>
 
고대 필리핀인들의 기원에 대해 상반되는 여러 개의 학설이 있다. 가장 널리 수용되는 언어학적, 고고학적 증거는 “타이완 유래설 모델”이며, 이것은 [[오스트로네시아인]]들이 [[량주 문화]]<ref>{{서적 인용|last1=Bellwood|first1=Peter|title=The Global Prehistory of Human Migration|date=2014|page=213}}</ref>와 같은 [[양쯔강장강]]의 [[신석기]] 문명으로부터 온 후손이라는 [[대만]]에서 왔다고 가정하고 있다. 그들은 필리핀에 기원전 4000년 전에 왔다고 하는 것이다.<ref name="solheim">{{서적 인용 |url=http://web.kssp.upd.edu.ph/linguistics/plc2006/papers/FullPapers/I-2_Solheim.pdf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080803020434/http://web.kssp.upd.edu.ph/linguistics/plc2006/papers/FullPapers/I-2_Solheim.pdf# |archivedate=2008-08-03 |title=Origins of the Filipinos and Their Languages |last=Solheim |first=Wilhelm G., II. |authorlink=Wilhelm Solheim |date=January 2006 |accessdate=August 27, 2009 |url-status=dead }}</ref><ref>Mijares, Armand Salvador B. (2006). [http://ejournal.anu.edu.au/index.php/bippa/article/viewFile/10/9 The Early Austronesian Migration To Luzon: Perspectives From The Peñablanca Cave Sites] {{웨이백|url=http://ejournal.anu.edu.au/index.php/bippa/article/viewFile/10/9# |date=20130823055847 }}. ''Bulletin of the Indo-Pacific Prehistory Association'' '''26''': 72–78.</ref> 기원 전 1000년경에, 이 제도에 살던 사람들이 네 개의 사회 집단으로 발전했으며, 사냥-채집을 하는 종족, 전사 사회, 고원 [[금권정치]], 그리고 해양 항구 집단으로 나눠졌다는 것이다.<ref>{{저널 인용
|author=Legarda, Benito, Jr.
|journal=Kinaadman (Wisdom) A Journal of the Southern Philipp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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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의 식민통치 ===
16세기 초반까지 여러 섬에 각기 다른 부족들이 나뉘어 있어 통일 국가는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1521년]]에 [[스페인]] [[카를 5세|카를로스 1세]]의 후원으로 실시한 서회항로 탐험중에 [[마젤란]]이 세부에 도착하면서 필리핀이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다. 1565년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Miguel Lopez de Legazpi)에 의해 식민지로 선언되었고,<ref name=":0">[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60294&cid=40942&categoryId=34073 <nowiki>[네이버 지식백과] 필리핀 [Philippines] (두산백과)</nowiki>].....1565년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Miguel Lopez de Legazpi, 1502~1572)에 의해 식민지로 선언되었고, 당시 스페인 국왕의 이름을 따서 '필리핀'이란 국호가 만들어졌다.</ref> 스페인의 필리핀 식민통치가 시작되었으며, 19세기 말까지 300년325년 이상동안 에스파냐의 통치가스페인의 식민통치가 지속되었다. 이때 [[동남아시아]] 유일의 [[로마 가톨릭교회|로마 가톨릭]] 국가가 된 필리핀은 [[수사 (기독교)|수도사]]의 천국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나라이름은 당시 스페인 국왕이었던 [[펠리페 2세]]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ref name=":0" /> 그러나 [[에스파냐|스페인]]에서 온 식민통치 권력과 결탁하여, 종교권력을 휘두르는 [[교회]]의 압제에 항거하여 필리핀 독립을 쟁취하려는 움직임이 [[19세기]] 말 시작되어 각지에서 [[민중]]항쟁이 일어났다.
 
=== 미국의 식민통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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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패한 [[스페인]]은 [[파리 조약 (1898년)|파리 강화 조약]]에 따라 [[미국]]에게 2,000만 달러를 받고 필리핀, [[괌]] 등 지배권을 양도했다. [[필리핀 혁명]]과 미국-스페인 전쟁의 결과 필리핀인의 최초의 공화국인 [[필리핀 제1공화국]]이 건립되었으나 곧바로 미국의 불인정과 함께 식민화가 시작되어 이에 저항하는 필리핀인과 [[미국-필리핀 전쟁]]이 일어났다. 초대 대통령 [[에밀리오 아기날도]]의 지휘아래 격렬하게 저항했으나 결국 압도적인 미국의 군사력에 많은 희생자를 낳고 굴복하여 필리핀 제 1공화국은 붕괴하였다.
 
그러나 이때의 많은 희생으로 인해 미국의 통치는 스페인식 압제보다는 좀 더 자치권을 많이주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1916년 필리핀의 자치법인 [[존스 법]]이 통과되었으며 이때의 미국의 필리핀 통치는 다른 서양국가와는 달리 비교적 자율적인면이 있었다. 그리고 필리핀의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필리핀은 식민지였기식민지로서 자체적인 [[경제정책]]을 수립하지못해수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바라던 만큼의 이익을 얻을 수 없었다.
 
미국의 식민통치때는 공중보건 개선과 무료 보건소 혜택으로 평균수명이 연장되었고 이로 인해 인구도 큰폭으로 증가하였다. 그리고 이때부터 남자와 여자가 같이공부할 수 있는 남녀공학제도 도입되면서 남성과 여성 도 똑같은 권리를 누리게되어 처녀도 혼자 외출할 수 있었으며 여러 전문직을 비롯해 어떤직장에서나 평등하게 일할 수 있게되었다. 새 토지 정책, 미국과의 자유무역, 농업성장, 교통 통신의 발달, 새로운 산업, 은행의 등장, 공중보건과 위생의 향상등으로 인해 인구가 약 3배 가까이 늘었으며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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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난 [[1946년]]에 [[미국]]은 필리핀의 완전 독립을 승인, 공화제를 채택한 필리핀은 [[마누엘 로하스]]를 초대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 뒤 필리핀은 아시아권에서 빠른 경제발전을 이룩하였지만, 국민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정치적/경제적 문제는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다. 필리핀은 [[미국]]에게 경제적 원조를 받는 대신, 공군/해군기지를 빌려주기로 한다.
 
[[1965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대통령이 되었다. 집권 초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민주 공화국'을 내세우고, 효율적 세제운영과 대외차관 유치 등으로 국가를 안정시키는 데 성공해 이슬람세력 등 반정부세력들의 반발에도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독재]]와 장기집권, 본인과 일가의 부정부패로 인해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내외에서 거센 비난을 받기 시작했다. [[1983년]] [[베니그노 아키노 2세]]의 암살을 계기로 마르코스의 인기는 끝없이 추락했고, [[1986년]] 베니그노의 아내인 [[코라손 아키노]]가 야당 단독후보로 대선에 출마하자 숱한 선거부정으로 겨우 재선됐다. 이로 인해 [[피플 파워 혁명|반정부 시위]]가 전국적으로 번지게 되었고, 결국 [[마르코스]]는 하야했다 하지만 마르코스가 지나간뒤 필리핀 경제는 거의 파탄의집으로 변신하기 전에야 이르러 멈췄다 더 있다 하야 했으면 완전 필리핀 경제는 붕괴했을 거다 .
 
[[1986년]] [[코라손 아키노]]가 필리핀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임기 초반부터 테러가 일어나, 정치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다. 1992년에는 [[아키노]]의 지명을 받은 [[피델 라모스]]가 대통령이 되었고, 1998년에는 [[영화배우]] 출신의 [[조지프 에스트라다]]가 대통령이 되지만, 부패로부정부패로 국민들의 반감을 사 2001년 중도사임했다.
 
[[에스트라다]]의 사임으로 [[디오스다도 마카파갈]](Diosdado Macapagal)의 딸인 [[글로리아 마카파갈아로요]]가 대통령이 되었다. 2004년 [[재선]]에 성공하지만, 부패에부정부패에 연루되어 결국은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현재는 [[하원의원]]으로 재직 중이다.
 
2010년 [[코라손]] 대통령의 아들인 [[베니그노 아키노 3세]](Benigno Aquino III)가 대통령이 되었다. 한편 [[아로요]]는 선거조작 혐의로 [[기소]]되었다([http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4202853]).
 
== 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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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 2월
:이 시기는 필리핀의 [[겨울]]이며, [[여름]]보다 비교적 기온이 낮고 [[비 (날씨)|비]]도 적다. 이런 경향은 [[마닐라]]를 포함한 [[루손섬]] 북서부에서 나타난다. 하지만, [[건기]]라 해도 [[태평양]] 동해안에서는 큰 [[비 (날씨)|비]]가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루손에는 1월에서2월사이에 태풍이 거의 다온다.
* 3 ~ 5월
:이 시기는 다른 나라의 [[봄]]에 해당하며, 필리핀에서는 아주 빨리 [[여름]]이 찾아온다. 그중에서도 [[5월]] 무더위의 낮 온도는 35 ~ 40도까지 오르기도 한다. [[밤 (시간)|밤]]에도 기온은 아직 남아있어서 대개 25도 정도이다. 하지만, 아직 [[건기]]이기 때문에 더워지진 않다. 하지만, [[바기오]] 지방은 이 시기가 되어도 시원하다.
* 6 ~ 12월11월
:대개 [[5월]]에 [[여름]]이 끝나고 [[6월]]부터 [[우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최근엔 [[지구 온난화|기상이변]]으로 [[우기]]의 시작이 늦어지고 있다. [[1983년]]에는 [[7월]] 중순까지 [[건기]]가 계속되기도 했다. 우기는 [[11월]]까지 계속되어서 이로 말미암아 [[비사야스 제도]] 지방, [[민다나오섬]] 북동부, [[루손섬]] 동해안에서는 매년 [[태풍]]에 의해 큰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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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에 따른 문화 ====
필리핀 민족은 지리적 문화적으로 지역에 따라 구별되며 각 지역적 집단은 상이한 풍습과 방언을 통해 구별할 수 있다. 북부 지역의 [[일로카노주]] 지역 주민은 강건하고 검소하며. 중부 평야지대의 [[타갈로그]] 주민은 근면하다. 중부지역 섬으로부터 [[비사야]]의 주민들은 낙천적이며 [[민다나오섬|민다나오]] 지역에는 각색의 원주민과 경건한 [[무슬림]]들이 거주하고 있다. 그래서 201년7월27일부터 13년 9월28일 까지 방사모르공화국이라고 모로이슬람 해방전선 이 세운 미승인 국이다 2개월1일동안 존속했다
 
===== 원주민 =====
[[원주민]] [[부족]] [[공동체]]는 군도 전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역적 문화적으로 다양하게광범위하게 세분되는 필리핀에는 '''111종111개''' 이상의 [[방언]]이 존재한다.
 
==== [[혼합문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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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유일한 [[로마 가톨릭]] 국가로서 플라자의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사회의 생활 관습은 [[로마 가톨릭]]의 [[전통]]이 짙게 풍긴다. 주요 도시마다 대부분 화려한 [[바로크]]양식의 로마 가톨릭 교회가 있는데 특히 필리핀의 [[로마 가톨릭 교회]]행사는 열광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예수의 수난을 기념하는 [[성 금요일]]에는 많은 참회자가 실제로 자기 몸을 [[십자가]]에 묶고 [[못]]까지 박아 [[예수]]의 고난을 연출하기조차 한다. 한편, [[사도신경]]에 근거하여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신자들간의 통공(communion)을 믿는 [[그리스도교]] 교의에 따라 각 [[바랑가이]](최소 행정단위)의 수호성인을 공경하는 축제도 신앙생활의 중요한 단면이다.
 
=== 교육 ===
=== 교육의 발전과 빈부의 격차 ===
[[미국]]의 영향은 무엇보다 [[영어]]의 사용이나 [[교육]]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 국민의 3/4이 [[영어]]를 할 줄 알며 학교, 정계, 재계에서도 [[영어]]가 많이 쓰인다. 교육 수준은 높은 편으로 초등 교육과 중학교 과정이 [[의무 교육]]제이며 [[문맹]]률은 10% 정도이다. [[미국]]의 대학, 대학원으로 유학하는 사람들도 많으며 [[미국]]과의 교수, 연구원의 교류도 활발한 편이다. 필리핀 사회는 빈부 격차가 다른 [[동남아]] 나라들보다 심각하여 일부 부유한 상류층은 거액의 재산을 축적했지만 빈민가 촌에는 [[상수도]] 시설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누추한 판잣집이 가득하며 [[매춘]]과 [[범죄]]가 횡행하고 있다. 수도 [[마닐라]] 중심부에는 옛 [[에스파냐]] 요새와 [[기독교]] 공동묘지 등 과거의 유물이 많이 남아 있으며 사람이 많고 교통 혼잡이 극심한 편이다. 과거 미군이 철수하고 남긴[[지프 (자동차)|지프]]를 개조하여 요란한 장식물을 부착한 [[지프니]]가 눈에 띄는 명물이다. 돈 있는 사람들을 위한 환락가에는 [[동양]]에서도 손꼽히는 요리로 유명한 [[레스토랑]]과 최고의 [[나이트클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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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여행|en:Philippines|필리핀{{언어링크|en}}}}
* [[필리핀의 민족]]
* [[{{임시링크|팬필리핀 하이웨이]]([[:|en:|Pan-Philippine Highway]])}}
* [[{{임시링크|해외 필리핀 노동자]]([[:|en:|Overseas Filipino Worker]]}}, '''OFW''')
* [[{{임시링크|2018년 쿠웨이트-필리핀 외교위기]]([[:|en:|2018 Kuwait–Philippine diplomatic crisis]])}}
* [[재필리핀 한국인]] -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한국인들이 베트남 다음인 2번째로 많이 거주하고 있다
 
== 외부 링크 ==
* {{언어링크|en|tl|ceb}} [http://www.gov.ph/ 필리핀 정부 홈페이지] {{웨이백|url=http://www.gov.ph/ |date=20120101105754 }}
* {{언어링크|en|tl}} [http://www.congress.gov.ph/ 필리핀 의회 홈페이지] {{웨이백|url=http://www.congress.gov.ph/ |date=20200604085514 }}
* {{언어링크|ko|en}} [http://www.itsmorefuninthephilippines.co.kr 필리핀 관광청관광부 한국 사무소]
* {{언어링크|ko|en}} [http://overseas.mofa.go.kr/ph-ko/index.do 주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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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외교부 지정 특별여행경보제도 흑색 경보 발령 지역}}
{{대한민국 외교부 지정 특별여행경보제도 적색 경보 발령 지역}}
{{대한민국 외교부 지정 특별여행경보제도 황색 경보 발령 지역}}
{{전거 통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