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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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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왕'''(辰爾王 : 생몰년 미상)은 7세기 초의 [[백제]]의 왕족으로 [[백제 무왕|무왕]]의 생부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백제 법왕|법왕]]의 아들이라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ref name=autogenerated2>[http://www.nichiren.ac/houzennji/toyotakeifu.htm 豊 田 家 系 譜<!-- 봇이 붙인 제목 -->]</ref><ref name=autogenerated1>[http://enjoyjapan.naver.com/tbbs/read.php?board_id=teconomy&nid=3482182 네이버 인조이재팬<!-- 봇이 따온 제목 -->]</ref> [[중국]]의 사서에서는 '''부여관'''(夫餘寬)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중국]]의 사서인 《[[후주서]]》(後周書)와 《풍속통 (風俗通)》과 《만성통보 (萬姓統譜)》, 《성보 (姓譜)》에는 그가 [[백제 무왕|무왕 장]]의 아버지라 한다. [[조선]]에는 19세기 [[이규경]]의 저서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를 통해 알려졌다.
'''진이왕'''(辰爾王 : 생몰년 미상)은 7세기 초의 [[백제]]의 왕족으로 [[백제 무왕|무왕]]의 생부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백제 법왕|법왕]]의 아들이라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ref name=autogenerated2>[http://www.nichiren.ac/houzennji/toyotakeifu.htm 豊 田 家 系 譜<!-- 봇이 붙인 제목 -->]</ref><ref name=autogenerated1>[http://enjoyjapan.naver.com/tbbs/read.php?board_id=teconomy&nid=3482182 네이버 인조이재팬<!-- 봇이 따온 제목 -->]</ref> [[중국]]의 사서에서는 '''부여관'''(夫餘寬)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중국]]의 사서인 《[[후주서]]》(後周書)와 《풍속통 (風俗通)》과 《만성통보 (萬姓統譜)》, 《성보 (姓譜)》에는 그가 [[백제 무왕|무왕 장]]의 아버지라 한다. [[조선]]에는 19세기 [[이규경]]의 저서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를 통해 알려졌다.


== 생애 ==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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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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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자 = [[진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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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항목 ==
== 관련 항목 ==
* [[위덕왕]]
* [[위덕왕]]

2014년 6월 28일 (토) 14:54 판

진이왕(辰爾王 : 생몰년 미상)은 7세기 초의 백제의 왕족으로 무왕의 생부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법왕의 아들이라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1][2] 중국의 사서에서는 부여관(夫餘寬)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중국의 사서인 《후주서》(後周書)와 《풍속통 (風俗通)》과 《만성통보 (萬姓統譜)》, 《성보 (姓譜)》에는 그가 무왕 장의 아버지라 한다. 조선에는 19세기 이규경의 저서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를 통해 알려졌다.

생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존재는 정종일본의 번주 오우치 요시히로가 보낸 족보를 통해 알려졌다. 오우치 요시히로는 자신이 성명왕의 셋째 아들 임성태자의 후손이라는 것을 확인, 입증해 달라는 공문을 조선 정종 1년(1398년) 7월 정종에게 정식으로 보낼 때 자기 가문의 족보를 보내면서 존재가 확인되었다.

그뒤 그의 존재는 잊혀졌다가 19세기 이규경의 저서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다시 법왕 선이나 위덕왕 창이 아닌 부여관이 부여장의 아버지라고 쓴 구절이 나오면서 다시 알려지게 되었다.

일본 측 기록

백제의 왕족으로, 일본 도요타 씨와 오우치 씨 가문의 제15세대 선조라고 한다.[2] [1] 일본 신찬성씨록, 도요다 씨와 오우치 씨의 족보에 의하면 그는 백제 무왕의 아버지이다.

일본 도요타 씨 가문의 가계도에서는 14대조 백제 법왕과 16대조 백제 무왕 사이에 존재한다. 그러나 진이왕이 법왕의 아들인지, 또 법왕의 아들이면서 무왕의 아버지인지, 아니면 단순히 법왕의 후임자이면서 무왕의 전임자로, 법왕과 무왕 사이에 재위하다가 물러난 왕인지는 확실하지 않다.[2] [1]

중국 측 기록

후주서》(後周書)와 《풍속통 (風俗通)》과 《만성통보 (萬姓統譜)》, 《성보 (姓譜)》 등에 의하면 백제 무왕의 생부는 부여관이라 한다.

19세기 이규경은 자신의 저서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는 중국 사서인 《풍속통 (風俗通)》과 《만성통보 (萬姓統譜)》, 《성보 (姓譜)》를 인용하여 "百濟國王夫餘寬生璋, 號帶方郡王。生義慈, 唐拜帶方郡王金紫光祿大夫。生隆, 熊州都督隆。生文宣, 司膳卿左衛大將軍樂浪郡公。此見《萬姓統譜》又《姓譜》"라 하여 "백제국왕 부여관이 장을 낳고 호는 대방군왕이다. 그가 의자를 낳으니 당나라로부터 대방군왕, 금자광록대부를 받았다. 그는 융을 낳으니 웅주도독이고, 그는 문선을 낳으니 사선경 좌위대장군 낙랑군공에 봉해졌다. 이는 만성통보 또는 성보에 나타났다."라고 되어 있다.

이규경오주연문장전산고 제2권 천지편(天地篇)의 지리류(地理類) 인종편에 "부여, 부유변증설"(夫餘、鳧臾辨證說)이라 하여 이를 언급하였다.

가계

주석

관련 항목

참고 문헌

  • 《오주연문장전산고 (五洲衍文長箋散稿)》
  • 후주서》(後周書)
  • 《풍속통 (風俗通)》
  • 《만성통보 (萬姓統譜)》
  • 《성보 (姓譜)》
  • 《신찬성씨록》